지나간 글 다시 읽을 때희망의 소리

호모 사피엔스 지배력을 잃다

유전자 검사 비용은 시간이 흐를수록 떨어질 테지만,
값비싼 새시술이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다.
그러므로 구식 치료가 대중의 품안으로
한 걸음 들어오면, 엘리트 집단은
몇 걸음 더 앞서 있을 것이다.
그동안은 역사에서도 부자들은
많은 사회적ᆞ정치적 이점을 누렸지만,
그들과 가난한 사람들 가르는
생물학적 차이는 결코 크지 않았다.
중세 귀족들은 자신들의 정맥에
우월한 푸른 피가 흐른다고 주장했고,
인도의 브라만 계급도 자신들이
원래부터 다른 사람들보다 똑똑하다고
주장했지만, 그것은 허구였다.
하지만 미래에 우리는 업그레이된
상위계급과 사회의 나머지 구성원들
사이에 육체적ᆞ지적능력 차이가
실제로 벌어지는 현장을 보게 될 것이다.
이런 가능성을 제기하면
과학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20세기의 수많은 획기적인 의학 치료들도
부자들이 먼저 시작했지만
결국 인류 전체가 혜택을 보았고,
그런 치료들은 사회적 역할을 넓히기보다
좁히는데 일조했다고 대답한다.
예를 들어 백신과 항생제 경우
처음에는 서구국가의 상위계급에만
혜택이 돌아갔지만
지금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혜택을 누린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21세기에도
그대로 반복될 거라는 기대는 희망적 사고에
그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할 만한 두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째, 의학은 중대한 개념적 혁명을
겪고 있는 중이다.
20세기에 의학의 목표는 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21세기에 의학의 목표는
건강한 사람의 성능을 높이는
쪽으로 가고 있다.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것은
평등주의적 목표였다.
왜냐하면 모두가 누릴 수 있고
누려야 하는 육체적ᆞ정신적 건강의 표준이
존재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그 표준 밑으로 떨어지면,
문제를 고쳐서 그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들과 같아지게' 만드는 것이
의사의 본분이었다.
반면 건강한 사람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은
엘리트주의적 목표이다.
모두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표준이라는
개념을 거부하고,
일부 개인들에게 우위를 제공하려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뛰어난 기억력,
평균 이상의 지능, 최고의 성적 능력을 원한다.
만일 어떤 형태의 업그레이드가 저렴하고
흔해져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것이 된다면,
그것이 새로운 기준점이 되어
그것을 능가하는 차세대 치료법이 개발 될 것이다.
둘째로, 20세기 의학의 혜택이
대중에게 돌아가는 것은
20세기가 대중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20세기 군대는 수백만 명의 건강한 군인들을
필요로 했고,
20세기 경제는
수백만 명의 건강한 노동자를 필요로 했다.
따라서 국가는 모든 국민의 건강과
활력을 보장하기 위해
공공 보건 서비스를 마련했다.
지금까지 인류가 이룬 가장
위대한 의학적 성취는 대중 위생시설을
보급, 예방접종 운동, 유행병 극복이었다.
1914년에 일본 엘리트집단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예방 접종을 실시하고
빈민가의 병원과 하수도를 건설하는 일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일본이 강한 군대와 강한 경제를 지닌
강한 국가가 되려면
수백만 명의 건강한 군인과 노동자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의 시대는 끝나고
더불어 대중의학의 시대도 끝날 것이다.
인간 병사와 노동자들이 알고리즘에 밀려나면,
적어도 일부 엘리트 집단들은 쓸모없는
가난뱅이 대중에게 더 나은 건강,
아니, 표준적인 건강조차 제공할 필요가 없으며,
차라리 표준을 능가하는
소수의 초인간을 업그레이드하는데
집중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일이라는
결론에 이를지도 모른다.
이미 일본과 한국 같은 기술 선진국들에서는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다.
두 나라는 아이들의 양육과 교육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그런 만큼 그들에게 점점 더 많은 것을 기대한다.
인도, 브라질, 나이지리아 같은
거대한 개발도상국들이 일본과
어떻게 경쟁할 수 있을까? (중략)
브라질이 일본과 경쟁하려면
수백만 명의 건강한 보통 노동자들보다
소수의 업그레이된
초인간이 훨씬 더 필요할 것이다.
특별한 육체적·정서적·지적 능력을 가진
초인간이 출현해도 자유주의적 믿음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중략)
20세기 인간의 거대한 프로젝트
(기아, 역병, 전쟁을 극복하는 것)는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풍요, 건강, 평화의 보편적 표준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21세기의 새로운 프로젝트
(불멸, 행복, 신성을 얻는 것)
역시 포부는 인류 전체를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들의 목표는
기준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능가하는 것이라서,
새로운 초인간계급을 탄생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런 초인간들은 자유주의의
근본 바탕을 포기하고
보통 인간을 19세기 유럽인이
아프리카인을 대한 것처럼 대할 것이다.
과학의 발전과 기술 발전이
인류를 쓸모없는 대중과
소규모 엘리트 집단의 업그레이된
초인간들로 나눈다면,
혹은 모든 권한이 인간에게서
초기능을 지닌 알고리즘으로 넘어간다면
자유주의는 붕괴할 것이다.
이때 어떤 새로운 종교 또는 이념이
이 공백을 매우고,
신과 같은 우리 후손들의 후속 진화를 이끌까? (중략)
월 단위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우리는 아마 중동의 동요,
유럽의 난민사태,
중국의 둔화된 경제성장 같은
당면한 문제들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수십 년 단위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지구온난화, 증가하는 불평등,
직업시장의 교란 같은 문제들이
크게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생명이라는
실로 장대한 관점으로 본다면,
상호 관련된 다음의 세 과정 앞에서
다른 모든 문제와 상황들은 작게 보일 것이다.
1. 과학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하나의 교의로 수렴하고 있고,
이 교의에 따르면 유기체는
알고리즘이며 생명은 데이터 처리 과정이다.
2. 지능이 의식에서 분리되고 있다.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들이 곧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잘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세 과정은 세 가지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당신이 이 책을 덮은 뒤에도
이 질문들이
오랫동안 당신의 마음속에 남아 있기를 바란다.
1. 유기체는 단지 알고리즘이고,
생명은 실제로 데이터 처리 과정에 불과할까?
2. 지능과 의식 중에 무엇이 더 가치 있을까?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고
알고리즘이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면
사회, 정치, 일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 유발 하라리 글 김병주 역 ‘호모데우스 – 미래의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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